Elley's Story

주체할 수 없는 웃음과 눈물의 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Party Planner Elley 2012. 7. 13. 00:04

주체할 수 없는 웃음과 눈물의 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 난 왜 그런지 알아요.

쓸모없는 애라서 그래요 너무 못돼서 크리스마스에도 착한 아기 예수처럼 되지 못하고 못된 새끼 악마가 됐어요."

" 바보 같은 소리 마. 넌 아직도 천사야. 심한 장난꾸러기는 맞지만....."                 -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중에서-

얼마전부터 TV를 안보기 시작하면서 읽기 시작한 가장 첫번째 책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였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으려고 하니, 좀 쉬운 책을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언뜻 떠올라 쥐게 되었지만, 성인이 되어서 읽으니, 정말 그 느낌이 사뭇 다르게 감동적이었다.  챙피할 정도로 소리내어 웃고,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과 콧물때문에 보기 흉하게 휴지가 잔뜩 쌓여만 갔고 끝내 하루만에 읽는 것을 끝냈지만 그 느낌만은 아주 오래갈 것만 같다. 

상상을 먹고 사는 아이 제제

제제는 정말 너무나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아이이다. 만일 내옆에 있다면 그 아이를 데리고 세계 여행을 떠나고 싶을 만큼 호기심 많고, 수다스러우면서도, 착한 마음씨와 영특한 머리를 가지고 있지만 제제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상상력이다. 그 아이에게는 조그마한 닭장이 동물원이 되고, 단추상자가 케이블카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라임 오렌지 나무와 대화를 나누며, 영혼을 나누는 제제는 어느 누구도 가지지 못한 상상의 세계로 자기만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낸다.

이 아이의 상상의 세계는 비참하면 비참할 수록 강해진다. 고통스러울 만큼 잔인한 가난속에서, 폭언과 혹독한 매질 속에서 아이는 상상한다. 서부 영화의 영웅과 인디언을 꿈꾸며 자신의 좀더 크고 어른이 되면 이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어릴적이 아니더라도, 생각해보면 비참한 날들이 겹쳐서 한꺼번에 달려들때는 정말 그 현실에 핑계를 대고 하루하루를 그냥 놔버리고 살았던것 같다. 마치 그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어버렸다는듯이, 세상을 원망하고, 내맘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저주와 망언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 아이처럼 사물에게도 영혼을 나눠줄 수 있는 상상력이 있었다면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면 난 조금 더 견디기 쉽지 않았을까?  몸서리치게 싫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때마다 수치스럽게 다가오는 기억들이 날 슬퍼하게 만든다. 그럴때마다 제제가 너무 부러울 것 같다

가난, 상처, 이별에 대한 우리의 자세 

"아빠가 나이가 많아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거 저도 알아요. 얼마나 속상해하는지도 알고요. 엄마는 새벽에 나가요. 살림에 보태려고 영국 사람이 하는 방직공장에서 일을 해요. 엄마는 압박붕대를 매고 다녀요. 실타래 상자를 옮기다가 허리를 삐끗했거든요. 랄라 누나는 공부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공장에 나가요. 이런 일들은 모두 가슴 아픈 일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날 그렇게 심하게 때릴것 까지는 없었는데. 저번 크리스마스에 아빠한테 마음대로 때려도 좋다고 하긴 했지만 이번엔 정말 너무 하셨어요."

- 중략-

"걱정마세요. 아빠를 죽일거에요. 이미 시작했어요. 벅 존스의 권총으로 빵 쏘아 죽이는 그런건 아니에요. 제 마음속에서 죽이는 거에요. 사랑하기를 그만두는 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언젠가 죽어요."

 가난은 사람을 참 비참하게 만든다. 하지만 가장 기뻐해야할 크리스마스에 아비를 저주하게 만드는 가난은 제제를 더욱 성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결국 5살난 어린아이는 구두통을 들고 구두닦기를 하러 시내에 나간다. 모두들 명절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을 동안 제제는 구두닦이를 해서 상처난 아비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기아와 재난' 상점에서 담배한갑을 사들고 아빠에게 용서를 구한다.  

이렇게 사랑하지만 뜻도 모르는 노래(나는 벌거벗은 여자가 좋아)를 불러 아빠를 위로해주려 했던 제제의 마음을 모른 아빠는 제제에게 매를 든다. 그 매가 얼마나 사무치는지, 아이는 마음속에서 아버지를 죽인다. 하지만 그 또한 사랑받고 싶으나 사랑받지 못한 부분에 대한 서러움에 가깝지, 원망과 노여움은 없다. 뼈에 사무치는 가난과 살을 애는 듯한 매질에도 이 아이의 사랑과 상상력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희대의 살인마같은 사람들의 어린시절의 학대와 가난 고통에 대한 여러가지 인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또 어떤 이들은 지금 자신의 불행의 원인을 부모의 가난과 무지를 되물림 받아서라고 고통스럽게 털어놓는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을 동안 제제를 보면 그 아이가 이 가난과 고통, 상처 때문에 살인마가 되고, 범죄자가 되어서 아버지를 저주하며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건 우리가 어떻게 고통과 상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메세지가 아닐까 한다. 뽀루뚜까(아저씨는 포르투칼인이다)의 죽음 앞에서 죽을 만큼 아파하던 제제에게 라임오렌지나무 '밍기뉴'는 꽃을 피워 그에게 이별을 선물한다. 

 이제 그 작은 라임 오렌지나무는 더이상 제제에게 말을 걸지 않겠지만, 그 이별을 통해서 제제가 한번 더 성숙해 지는 것을 보여주며 이제 열매도 얻을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 다 지나갔다, 얘야. 모두 끝났어. 너도 이 다음에 크면 아빠가 될거야. 그리고 살다 보면 어려운 시기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될거다. 하는 일마다 잘 안되고 끝없이 절망스러울 때가 있어.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 아빠는 싼뚜알레이슈 공장의 지배인이 됐어. 이제 다시는 크리스마스에 네 신발이 비어 있는 일은 없을 거다."

진실로 맺어지는 우정과 사랑만이 상처와 고통, 가난을 벗어나게 해주는 유일한 길이다. 그것을 그저 어른으로 자라나는 통과의례, 성장통이라고만 말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 고통이 여전히 계속되는 인생에서 그냥 없어지거나, 자라나는 사람은 없으니, 그저 함께 이야기 나누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영혼의 오렌지 나무 하나를 심고 싶을 뿐이다.

- 엘리